“나를 정의하는 것은 내 마음속 생각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이다” 크리스찬 베일이 억만장자 히어로로 등장하는 2005년 블록버스터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은 이렇게 말한다. 일부 학자들이 현대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심오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대사에 영감을 받아 인간이 정말 행동을 통해 스스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연구를 진행했다.
홍콩중문대 경영대학원 리웬동 경영학과 조교수가 연구를 주도했으며 이 밖에 7명의 학자가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진은 리더 역할을 맡아 직무상 책임을 더 많이 지는 것이 성격적 특성을 변화시키는지 알아봤다.
리 교수와 연구진은 논문 ‘리더가 되면 성격도 변할까? 역할 중심 관점에 입각한 두 가지 종적 연구 조사’를 통해 성격적 특성이 고정적이라는 통설에 맞서 성인기에도 성격이 변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시도했다.
리 교수는 “성인기에 일어나는 성격 발달은 새로운 직무를 맡는 것에 주로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막 리더가 된 사람은 조직 내에서 폭넓게 책임을 떠안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일반 직원일 때보다 더 근면 성실해 효율적이고, 조직적이고, 신중하고, 성과 지향적이고, 하급자에게 믿음직한 사람이 되도록 요구받는다”고 말했다.
또 리 교수는 “리더 역할에 따라붙는 기대치에 부응하고 책임을 다하려면 불확실성과 가변성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리더는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며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도 부정적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빅 파이브
연구진은 소위 ‘빅 파이브’ 성격적 특성으로 분류되는 것 중 두 가지 특성이 변화한다고 봤다. 두 가지 특성이란, 근면 성실과 정서적 안정으로, 전자는 믿음직하고, 성과 지향적이고, 신뢰할 만하고, 조직적이고, 우수하고 꼼꼼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기질과 관련이 있어 리더십과 업무 성과를 좌우하는 좋은 지표이다. 후자 또한 리더에게 바람직한 자질로,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침착히 대처하고 역경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밖에 다른 빅 파이브 특성으로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 외향성, 쾌활함이 있다.
리 교수는 리슈핑 홍콩 폴리텍대 교수, 펑지에 럿거스대 교수, 왕모 플로리아대 교수, 마이클 프레제 아시아 경영대 및 뤼네부르크 로이파나대 교수, 우치아후에이 리즈대 교수, 홍콩중문대 경영대학원 예비 박사생 장홍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미국과 호주 데이터베이스에서 공개적으로 열람 가능한 두 건의 연구를 가져와, 개인이 각기 다른 시기에 겪는 성격 발달 양상을 장기간에 걸쳐 비교한 두 연구를 검토했다. 연구 대상은 리더 역할을 맡게 된 ‘리더 그룹’과 직원 자리에 머문 ‘비리더 그룹’으로 나뉘었다.
연구 결과 리더 역할을 맡게 되면 개인이 지닌 근면 성실함이 강화됐으나 정서적 안정의 경우 두 연구에서 모두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리 교수는 “두 연구 결과는, 리더 자리에 오르면 근면 성실함이 상당 부분 강화되는 것의 상관관계 그리고 직무 변화가 일으키는 매개 효과에 관한 우리의 가설을 지지해 줬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중책을 맡은 사람의 성격적 특성이 어떻게 변화하고 왜 변화하는지 또 직무상 요구가 늘었을 때 성격이 발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폈다.
리 교수는 이번 연구의 분석 결과로 향후 기업들이 경력 개발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얻게 됐으며 지속 가능한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리더십 계승을 계획하는 데에도 도움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직원의 경영 역량을 개발하고 싶으면 비공식적이더라도 직원에게 리더 역할을 부여하라고 기업에 권하고 싶다. 직원이 근면 성실과 관련된 행동과 성격적 특성을 가다듬어 미래 업무를 감당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직원 훈련 과정의 범위와 내용을 넓혀 성격 발달을 다룰 것과, 좀 더 종합적인 형태의 리더십 개발에 주목할 것을 기업에 권한다”
성격 변화
연구진이 참고한 첫 번째 연구는 리더 그룹 61명, 비리더 그룹 128명을 대상으로 했으며1995년과 1996년, 이후 10년과 그 이후 20년, 총 세 기간 동안 수집한 미국 데이터를 사용했다. 또 다른 연구는 리더 그룹 342명, 비리더 그룹 675명을 대상으로 했고, 2005년, 2009년, 2012년에 걸쳐 4년 간격으로 수집한 호주 데이터를 사용했다.
리 교수는 “두 연구 결과, 공통적으로 리더가 되고 나면 개인의 근면 성실함이 강화됐고, 예전보다 믿음직하고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성향으로 변화했다. 리더 역할을 꾸준히 잘 수행하기 위해 리더 그룹은 이러한 행위를 하는 데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그 행동이 습관화돼 성격적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리 교수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인간이 곧 사회 시스템의 생산자이자 산물’이라는 주장을 발전시킬 연구를 촉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연구들은 첫 취직, 결혼, 실직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나 직업 만족도, 성격, 불안전성, 수입 및 직업적 지위의 영향을 주로 살폈다. 반면 이번 연구는 리더가 된 후에 일어나는 성격 발달의 양상, 더 중요하게는 직무상 요구가 달라졌을 때의 변화상을 살피는 데 중점을 두어 기존 연구를 확장했다. 이에 관해 리 교수는 “성격적 특성은 고정적인 편이지만 가변적이기도 하다. 또한 그 변화가 매번 극적인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변화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밝혀낸 결과는 일반 경향일 뿐이다. 성격 변화의 속도, 시기, 강도 등은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아울러 연구진은 두 가지 우려 사항을 강조했다. 첫 번째로 기존 연구에 따르면, 지나치게 근면 성실한 직원의 경우 새로운 환경에 수월하게 적응하지 못하며 꼭 필요한 창의성이 다소 부족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두 번째로 근면 성실함이 강화되면 근무 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유연성이 줄어드는 등 불이익이 생길 수 있으니, 리더들이 이와 같은 불이익과 이익의 균형을 맞추도록 기업이 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직원들의 경력 관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해 리 교수는 “관리자가 되는 것의 이점과 비용을 가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승진하게 되면 점차 근면 성실함을 키워나가게 되지만 반대로 적응력과 창의력이 약해질 수 있다. 직무상 요구가 늘어나다 보면 스트레스가 높아져 삶의 만족도를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