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Thinking’이란 용어는 디자이너 특유의 사고 흐름이나 문제 해결 방식을 빗대어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먼저 통용되기 시작했다. 심리학자인 Bryan Lawson이 과학 전공 및 건축학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과학 전공생들은 문제 자체에 집중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반면 건축학 전공생들은 해결책에 집중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차이를 보였다. 컬러 블록으로 단층 구조를 만드는 문제(테두리 블록의 색깔은 주어지지만, 근접 블록 배열에 대해 숨겨진 몇 가지 법칙이 있다)를 해결할 때 과학 전공생들은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블록을 배열해 가능 여부를 확인하면서 법칙을 먼저 알아내는 데 집중 한 반면, 건축학 전공생들은 일단 최종 단층 구조를 만들어 놓고 조금씩 블록 배열을 바꿔가며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경향을 보였다. Lawson의 연구는 디자이너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떤 접근 방식이 우월한지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연구는 문제 자체가 함께 규정하고 있는 많은 제약 조건들을 잠시 접어두고, 해결책 중심으로 사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이 창의성이란 결과물과 직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해결책 중심의 사고 방식은 2000년 대 말부터 디자이너 사회를 넘어 경영자들이 사업환경에서 직면한 문제를 창의적/혁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 본격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세계적인 디자인 및 컨설팅 에이전시인 IDEO의 역할이 컸다. 2005년 설립된 d.school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인 SAP의 설립자 Hasso Plattner가 우연히 Design Thinking의 선도자였던 IDEO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러한 방법론을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는 뜻을 품고 d.school 설립을 위해 3,5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가능해졌다. Hasso Plattner와 IDEO의 설립자 David Kelley는 Design thinking이 혁신을 만들어가는 프로세스로서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오히려 design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심미적’ 요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 애플 : 단순함이 궁극의‘세련’

Design Thinking이라는 용어를 구체화하여 사용하지는 않지만, 제품/서비스 개발 과정에서 Design thinking의 특징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업으로 애플을 꼽을 수 있다. 애플의 성공은 똑똑한 전략적 선택이나 시장의 타이밍을 정확히 집어내는 역량에서 나왔던 것이 아니다. 대신 사용자들이 기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철저히 이해하고자 하는 깊이 있는 고찰과 정말 멋진 제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열망이 오늘의 애플을 만든 토양이 되었다. 사용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기기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에 집중해 디자인을 먼저 도출한 후, 만족할만한 디자인 결과물에 대해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다음 단계에서 고민한다. 디자인 측면에서 창의성과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엔지니어들에게도 같은 수준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촉구한다는 것이다.
‘단순함’은 애플이 사용자 관점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기기의 개발 의도-컨셉 개발-제조-사용자 경험의 전 과정을 고려하는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단순함이 궁극의 세련됨이라는 강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사내 교육 기관인 ‘Apple University’에서도 이런 사업 철학을 주지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피카소의 ‘The Bull’ 연작처럼 실물처럼 자세한 모습의 황소에서 출발하여 점차 디테일은 비워지고 핵심적인 특징만 남기는 연습을 한다(<사진> 참조). 마지막 이미지는 단순한 선 몇 개로 구성되어 있지만 황소의 모습임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반복적 수정을 통해 가장 단순하고 간결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애플의 디자인적 사고다.
디자인은 최우선적으로 사용자의 니즈와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본질은 반복적 수정 과정에서도 가장 중심에 놓여 있다.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과 개발 과정에 녹여내는 것은 애플의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디자인 과정은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지에 대해 매우 희미한 관념을 가지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이를 서서히 구체화시키고 정의를 명확히 하는데 사용자 관찰을 통한 실증적 뒷받침이 많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참여하는 반복적 수정이 개발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의 인식과 행동, 감성과 경험에 깊이 몰입하여 얻어지는 애플의 이러한 디자인 중심적 사고는 디자인 작업을 총 지휘하는 Jonathan Ive의 역할이 크다. 기술이 아닌 인간에 모든 디자인의 출발점을 두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최근 최고 디자인 책임자 (CDO)로 승진하면서, 디자인 총괄 임원이 최고 경영진에 오르는 첫 번째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외신들은 Ive가 앞으로 주요 경영 이슈를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하며 디자인 중심의 애플 조직문화를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구글 : 서비스의 본질을 이해하는 작업부터

구글에서 스타트업들을 발굴/육성시키는 Google Ventures는 디자이너와 UX (User Experience) 전문가로 구성된 디자인팀을 가동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들은 엔지니어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기술 중심적 사고에 치우칠 가능성이 높아 이를 보완하고 디자인 측면에서의 통창력을 공유하는 것이 디자인팀의 주요 목적이다. 개별 스타트업과 디자인팀은 ‘Sprint’라는 일종의 워크샵 세션을 통해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제품/서비스 컨셉을 깎고 다듬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갖춰나가게 된다. 예를 들어, e-커머스 서비스 영역의 스타트업이 출시할 앱을 구상하고 있을 경우, 디자인팀은 먼저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서비스의 본질을 이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러한 이해과정에서 디자인팀 구성원들은 각자 “우리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다음 과정에서 이를 공유하며 짧지만 치열한 논의를 거친다. 스케치와 스토리라인 등을 활용해 남길 것과 피해야 할 것을 구분하고, 그 결과물로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다음 단계는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을 사용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관찰하며 피드백을 받는 테스팅 과정인데, 완벽한 앱이 아닌, 주요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의 프로그램 도구를 활용해도 상당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얻어진 피드백으로 효용성이 떨어지는 기능과 성공적인 기능, 개선이 필요한 기능을 분류하고 최종 서비스의 컨셉에 더욱 다가가게 된다.
Google Ventures 디자인팀은 매우 높은 집중력을 단기간에 투입해 스타트업을 도와 3~4일만에 컨셉 완성도 제고부터 사용자 반응까지 일련의 개발 과정의 노하우를 전달한다. ‘Sprint’ 세션의 성공 여부는 Design thinking의 진정한 의미를 얼마나 스타트업에 잘 전달하고 학습시켰는지에 달려있다고 디자인팀은 말한다. 이들은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에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역량을 심어주는 것을 핵심 미션으로 삼고 있다. 물론 모든 종류의 스타트업에 이러한 접근 방식이 매력적으로 평가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Google Ventures는 Design thinking적 접근이 다른 거대 벤처 캐피털이 제공하지 않는 차별화 포인트로서 사업 초기의 유망 스타트업에 어필할 수 있는 요소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출처 :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