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통틀어 명멸했던 경제강국은 수없이 많았지만 ‘세계의 공장’이란 칭호를 받으려면, 제조업의 발전과 국제교역의 확대란 전제가 필요했다. 정작 중국부터 18세기까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었지만, ‘세계의 공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농업과 상업으로만 부를 일궜던 제국주의 시대 일부 서유럽 강국들을 ‘세계의 공장’으로 부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성공시킨 영국이었다.

1860년대 영국은 1차 과학기술혁명 이후 세계 과학기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동시에 영국의 제조업생산은 전세계의 3분의 1 이상, 제조업제품 수출은 전세계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세계경제사(史)에서 첫번째의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미국이 전기 보급 및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제조업을 빠르게 발전시켰고, 19세기 말에는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 영국으로부터 ‘세계의 공장’의 지위를 빼앗았다. 미국의 철강, 자동차, 화공, 기계설비 등 생산규모와 수출시장 점유율은 세계 최대였다. 영국과 미국은 당시 전세계 제조업 생산량 비중에서 절대적인 선두를 차지했던 공업대국이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세계 최고의 국가였다. 두 나라는 3차 과학기술 혁명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였고, 제조업 분야가 절대적으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즉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두 나라는 명실상부한 제조업 대국이자 제조강국이었고, 진정한 ‘세계의 공장’이었다.

20세기 후반 들어 ‘기술입국(立国)’을 선언한 일본은 후발국의 우세를 이용하여 영미의 선진기술을 학습하고 혁신을 이뤘다. 중공업을 대규모로 발전시켰고, 국제 분업과 무역 세계화에 힘입어 철강 자동차 전자제품 등 분야에서 생산액, 수출시장 점유율, 기술수준에 있어 세계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영국, 미국과 비교해 일본은 제조업 총 생산량에 있어서 절대규모가 세계 1위는 아니었다. 양적인 측면에서 제조대국이라고 부르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제조강국이나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렸던 것은 일부 산업에서 선진 기술을 이용하여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고, 제품 부가가치의 상당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21세기 들어서는 국제분업이 더욱 고도화되면서, 한 나라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가가 제조강국으로서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즉, ‘진정한 세계의 공장’이 되기 위해서는 제조업 분야에서 양적으로 세계 선두를 차지함과 동시에 기술수준과 제품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높은 수준과 점유율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세계의 공장’이 되려면 ‘제조대국’이자 ‘제조강국’이어야 할 것이다.

옛소련도 ‘세계의 공장’

1913년 서유럽의 산업혁명에서 크게 뒤처진 소련(당시 러시아)은 국민총생산에서 공업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았으며, 세계 공업생산액 중 차지하는 비중도 4%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뒤 1922년 말 러시아연방을 주축으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연맹이 성립되면서 본격적인 공업화의 길을 걷게 됐다. 1925년 소련공산당 14차 대표대회에서 사회주의 공업화 계획이 제출됐고, 1928년부터 5년 단위로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했다. 두 번째 5개년 계획이 끝났을 때인 1937년 소련의 제조업 생산액은 프랑스 영국 독일을 넘어서 유럽 1위, 세계 2위로 올라선다. 자동차 트랙터 항공기 공작기계 측정기 화학 금속제련 등 당시 기준 신흥 제조업을 골고루 발달시켰는데 주로 중공업 위주였다. 공업생산의 폭발적 증가에 힘입어 1, 2차 5개년 계획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각각 19.7%, 17.1%에 달했다.

세계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기에도 소련의 제조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1950년~1980년 제조업 부가가치 평균증가율이 8.7%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같은 기간 자본주의가 발달된 국가의 평균적인 성장률인 4.6%를 크게 앞섰다. 아울러 미국과의 격차도 계속해서 줄어들어 1980년 소련의 제조업 총 부가가치는 미국의 80%에 달했다.2 발전량은 미국의 52%에 달했고, 석유 철강 철광석 화학비료 등 20여종의 주요 제조업 기초제품 생산량은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냉전 탓에 주로 사회주의 경제권과의 교역에 치중해서 그 위상이 격하됐을 뿐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명실상부한‘세계의 공장’이었던 셈이다.

소련경제는 중공업의 성장에 힘입어 1950년대 연평균 14%의 고속성장을 기록했으며, 1970년까지도 연평균 8%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체제경쟁을 우선해 중공업 편중정책을 지나치게 펼친 탓에 경제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소비재 부문과 연료, 원자재 제조업은 낙후하게 됐으며, 중공업 분야도 과도하게 물량목표에 매달리면서 품질 다양화 및 혁신에 실패했다.

소련경제는 1980년 정점을 찍은 뒤 정치 불안정과 불합리한 경제운영 등으로 정체상태에 들어갔다. 경제성장률은 3%대로 급락했고, 사회경제 발전은 물론 국민생활 수준도 하락했다. 미국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기 시작해 결국 고르바초프 서기장 시절, 개혁개방에 나서게 되지만, 연방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중국, 세계의 공장화 게속되고 있다

세계 언론매체가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일컫기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장난감 텐트 의류로 시작된 ‘Made in China’ 열풍은 컴퓨터 가전제품 등 전자 분야로 확산되더니 이제 철강 자동차 고속철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 정부는 스스로를 ‘껍데기 공장’ 쯤으로 여긴다. 제품을 찍어내도, 대부분의 부가가치는 제조강국들이 가지고 간다는 불만이다. 최근 수년 새 인건비 상승까지 겹쳐 일부 노동집약적 산업들이 탈(脫)중국 행렬을 이루자, 일각에선 ‘세계의 공장이 무너진다’는 위기감마저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지표로 살펴볼 때, 중국이란 세계의 공장은 무너지기는커녕 부단히 내실을 챙겨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글로벌 부가가치 비중도 미국에 이어 2위권에 접근했고, 노동생산성도 빠르게 개선되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미래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혁신형 연구개발이나, 인재 풀 육성, 사회적 인프라 확충도 대규모로 진행시켜 선진 제조강국과의 격차 없애기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 5월 발표한 ‘중국제조 2025’ 국가전략이 보기 드물게 제조강국과의 순위경쟁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중국 정부가 그간의 제조업 육성을 통해 자신감이 붙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정한’ 세계의 공장은 생산활동을 통해 창출된 과실을 주도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향유하는 경제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생산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대의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부가가치 창출에서, 특히 일인당 창출능력면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강국인 미국과의 격차는 엄연하다. 중국 정부의 1단계 목표시한인 2025년 전에 그 격차를 해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경제 전반의 혁신역량 강화를 통해 부단히 부가가치를 올려간다면, 명실상부한 ‘세계의 공장’에 등극하는 산업분야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출처 : LG경제연구원